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똑같은 배반을 하더라도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올 것인지를 인간의 의지로 결정해야 함을 일러줍니다. 두 사람이 똑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김으로써,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함으로써 배반의 모습을 보입니다. 유다는 다시 돌아올 마음이 없었습니다. 복음도 전하고 있듯이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라고 하면서 인간이 가진 의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악에게 자신을 맡겨버립니다.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인간적인 의지의 약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배반까지는 아니지만 부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정말로 예수님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인간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가 어쩔 수 없이 보인 인간적 약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약함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기도할 때 드러날 수도 있고, 자선이나 단식을 하면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신앙의 전반적인 모습 안에서도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약함은 그저 인간적인 것이라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약함이 신앙을 뛰어넘거나 이겨먹으려고 할 때 우리가 의지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성령이십니다. 악한 영은 우리를 늘 뒤흔들려고 애씁니다. 그것에 넘어가면 우리가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악한 영에 빠져들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지녀야 하는 의지입니다. 그러한 의지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수 있는 현세의 유혹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유혹들이 오늘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기라고 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우리 역시도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피눈물을 흘렸듯이 우리 역시도 피눈물을 흘리며 통회를 할 것입니다.
그런 통회를 필요로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지닌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의지를 잘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의지로 움직이는 신앙인에게는 늘 도움이 있기 때문에 악한 영을 물리쳐낼 힘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우리가 도움을 받고 늘 하느님과 함께, 그 무엇도 우리가 지닌 좋은 의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로써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