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사람이 되었다.”

(에제 16,8)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 속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께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기산 주교님

차동엽 신부님

나길모 주교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

세상을 떠난 故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의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 사제단에게 있어 큰 어른이셨던, 신부님을 잃은 슬픔에 위로를 주시기를 청합니다. 특별히 병고 속에 계신 故 김병상 몬시뇰을 옆에서 아들처럼 매일 모든 수발을 들었던 우리교구 연정준 신부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교구 사제단의 형제애와 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울러 故 김병상 묜시뇰을 위해 많은 기도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교구 사제단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랜 기간 故 김병상 몬시뇰과 함께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셨던 함세웅 신부님은 이렇게 간략하게 몬시뇰의 일생을 표현하셨습니다. 故 김병상 몬시뇰이 하신 모든 일들을 이 자리에서 어떻게 다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제생활 51년 동안 고인은 하느님이 주신 재능과 언변, 지혜 등 모든 것을 바쳐 하느님의 뜻을 찾아, 하느님이 지금 여기서 원하셨던 일을 하셨습니다. 사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삶 전체로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故 김병상 몬시뇰의 그 훌륭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고인은 늘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故 김 몬시뇰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건강 때문에 신학교를 떠났고십여년 뒤에 다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너무 힘들었지만잘 견뎌 이렇게 사제가 되었습니다하느님 저는 참으로 보잘 것 없고 매우 부족합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교우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저 나름대로 순교자들을 본받으며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故 김병상 묜시뇰은 충청남도 유구에서도 멀리 떨어진 요골 공소에서 순교자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주 시골 출신이십니다. 그러나 어머님에게서 신앙의 영향을 받았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늘 겸손한 신앙에서 가지셨습니다. 뭔가의 큰 일을 한 것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을 늘 청했던 겸손한 사제였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듯이,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1970, 80년대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경제적인 이데올로기가 삶의 기준이 되어가면서 모두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시대였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인 어두운 시간을 보내던 시기에 故 김병상 몬시뇰은 제2차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서 말하듯, 하느님이 원하시는 ‘기쁨과 희망’의 세상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정의와 진리를 외치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향해 사셨습니다. 그래서 정의 구현 사제단 활동을 통해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건설에 투신하셨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기 위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몬시뇰의 사제서품 성구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를 삶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만이 상처받은 이들, 소외된 이들,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치유할 수 있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故 김병상 몬시뇰님은 사회 안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시면서도, 동시에 본당 사목 안에서도 늘 열성과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새로운 양 찾기, 잃은 양 찾기 운동’을 통해 교회 내 재 복음화, 새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의회 정신에 맞게 평신도 단체의 활성화와 여성 수도자들에게도 고유한 역할과 권한을 부여하면서 사목 협조자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당의 지역 사회의 개방을 통해 본당과 사회가 분리된 실체가 아닌 세상 안에 교회가 무엇인지를 본당 사목 안에서부터 보여주셨습니다.

원로 사목자가 되신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 故 김 몬시뇰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2년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갔다가 쓰러지신 후 병고를 치르셨습니다. 작년 사제 서품 금경축이 되기 전에 몬시뇰님은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금경축 미사는 성모당에서 하고 싶다’고. 황상근 신부님과 작년 6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성모당에서 미사 주례를 하셨지만, 건강 상태는 좋지 못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음에 미사 후에도 무척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성모당에 오셔서 미사를 공동 주례하시고, 미사 후에 신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열심한 신앙 안에서 살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제성모병원을 찾아가 기도해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교구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알았다는 그 모습.

故 김 병상 필립보 몬시뇰은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시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인간적인 슬픔이 앞서지만, 우리 모두는 몬시뇰님이 보여주신 그 모습을 가슴에 담아, 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신앙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앞선 신앙을 살고 보여주셨던 故 김병상 몬시뇰님을 잘 기억하고, 잘 보내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강론을 마치면서 故 김병상 몬시뇰님의 기도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주님우리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듯이우리 국민도 진보니 수구니영남이니 호남이니기득권과 소외계층이니 하면서 갈라지지 않고 하느님 안에 우리가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 아멘.

 인천교구 교구장 정신철 요한세례자 주교 (2020년 4월 27일 장례미사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