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3동 성당 교우 권인순 헬레나자매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셨습니다. 당선작을 교우분들께서 읽어보시기를 바라며 올려봅니다. 권인순 헬레나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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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본문
아빠의 편도 티켓
“지민아. 아빠가 곧 여행을 떠날 거야.”
어둠이 짙게 깔린 호수 위에 불빛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 있는 별들을 따다가 호수에 뿌려놓은 것 같았다. 나는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물 위에서 즐기는 불멍이라고나 할까.
“박지민! 아빠 얘기 듣고 있어? 아빠 여행 갈 거라고?”
나는 낚싯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낚싯대의 불빛이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잔잔했던 호수 물결이 일렁였다. 나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계속 찌를 노려보았다. “언제, 어디로 가는지는 안 궁금해?”
이런 중요한 순간에 시답잖은 말로 방해를 하는 아빠에게 슬슬 짜증이 났다.
“항상 가족여행은 아빠가 알아서 했잖아. 왜? 설마 나만 빼고 엄마랑 둘이 가는 거야?”
엄마 얘기를 하니 다시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침에 스마트폰 게임 시간 때문에 한바탕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던 터였다. 사실 오늘 낚시도 엄마에게 혼나고 난 뒤 꾸리꾸리한 장마철 날씨 같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아빠가 준비한 깜짝 여행이었다.
아빠는 이렇게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한다. 날씨가 좋아서, 비가 와서, 기분이 우울해서, 기분이 좋아서 여행을 떠났다. 어떻게든 여행을 가기 위해 이유를 찾는 것 같았다.
“아니. 혼자 가는데 이번엔 좀 오래 걸릴 거야.”
“나도 가면 안 돼? 사춘기 아들을 엄마랑 단둘이 전쟁터에 남겨두고 떠나는 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요즘 엄마랑 나는 매일 크고 작은 전투중이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을 일들을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잔소리를 했다. 방 정리, 학원숙제, 게임 시간, 심지어 양말 벗는 것까지 잔소리를 했다. 나도 4학년 때처럼 착하기만 한 아들은 아니었다. 일부러 더 반항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더 뾰족하게 대들기도 했다. 아빠는 내가 지금 사춘기라 몸도 마음도 크는 중이라고 했다.
“하하. 엄마랑 지민이는 적군이 아니야. 서로 아군이지.”
“아군끼리 돌아서면 더 무서운 적이 되는 거 몰라?”
낚시대는 작은 움직임을 끝으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지민아. 사실 아빠가 얼마 전에 누군가한테 편도 티켓을 선물 받았어. 아빠가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티켓이야.”
“누군데? 해외여행이야? 아빠 친구가 있다는 프랑스? 아빠 혼자서 해외여행 가니까 미안해서 그러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 아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아빠가 낚싯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좀 더 먼 곳이야. 거기엔 아빠가 정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어. 아빠랑 고등학교 때 베프였던 친구도 있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계시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곳? 내가 생각하는 그분들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아빠가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면 뭐지?
“어디 간다는 거야? 내가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또 계셔?”
“아니. 저기 높은 곳 말이야. 아빠가 이번엔 거기로 여행을 가야 할 것 같아.”
아빠가 고개를 들어 초승달이 흐릿하게 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내 얼굴을 보고 슬프게 웃었다.
“하늘? 하늘나라? 왜? 아빠 죽어?”
낚싯대를 잡고 있던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하늘에서 아빠가 빨리 보고 싶은가 봐. 생각보다 빨리 오라고 하네. 아빠는 이제 곧 지구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새로운 곳에서 여행을 시작할 거야. 우리 지민이, 아빠가 여행 좋아하는 거 알지?”
“뭔데? 무슨 농담을 이렇게 무섭게 해.”
“아빠가 얼마 전에 건강검진 한 거 알지? 아빠가 좀 많이 아프대. 그래서 곧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거라고 하네.”
“병원 가면 되잖아. 가서 치료하면 되지. 무슨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디 놀러 가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심장이 쿵쾅쿵쾅 고장 난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아직도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뜨거운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울지마, 그렇게 슬픈 일이 아니야. 좀 빠르긴 하지만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하는 길이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한테 어떻게 그래? 낚시 재미없어졌어. 집에 갈래.”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간신히 낚시 의자를 부여잡고 버틸 수 있었다.
“앉아.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손맛은 봐야지.”
아빠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나는 힘없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내 맘도 모르고 여전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불빛들을 힘껏 째려보았다.
“엄마는 알아? 아빠 여행 가는 거?”
“어. 엄마가 요즘 너한테 예민하게 구는 건 너 때문이 아니라 아빠 때문이야. 그래서 여러모로 아빠가 너한테 미안해. 그러니까 우리 지민이가 좀 엄마를 이해해 줬으면 해.”
“언제 가는데? 그 여행이라는 거.”
“삼 개월쯤 뒤에.”
일 년도 아니고 반년도 아니고 삼 개월. 남은 시간이 겨우 백 일쯤이었다. 나는 아빠한테 처음으로 화가 났다. 그리곤 그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낚시터에서 돌아온 후에도 나의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뜨거운 불길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나는 꾹꾹 참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장 난 시계처럼 자주 삐걱거렸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멈춰서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혼자 맞은 고목처럼 표정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마치 엄마가 불치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유일하게 아빠만 더 바빠졌다. 여느 때처럼 매일 아침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맛있는 빵을 구웠다. 단골손님들과 더 밝게 웃으며 대화했고 새로운 빵 개발에도 열심이었다. 매일 화분에 꽃을 심더니 열흘 만에 아파트 베란다를 화원처럼 꾸며놓았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엄마와 나에게 엄청난 폭탄을 투척해놓고도 한가롭게 꽃을 심고 있는 아빠가 밉고 화가 났다.
“왜 자꾸 꽃을 심는 건데? 아빠 없으면 결국 얘들도 다 죽어 버릴 텐데.”
“예쁘잖아. 아빠는 꽃이 참 예쁘더라.”
“그러니까 그 꽃들은 왜 자꾸 심냐고? 나중에 누가 키우라고?”
낚시터에서 돌아온 후 오랜만에 하는 부자지간에 대화인데 가시 돋친 말이 쏟아졌다.
“예쁜 거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행복해지잖아. 우리 지민이랑 엄마랑 예쁜 꽃 보면서 행복해지라고…….”
“아빠가 없는데 우리끼리 행복할 수 있겠어? 아빠 바보야?”
“지민아. 아빠는 이곳에서의 남은 시간 동안 엄마랑 너랑 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하고 즐기고 싶어. 오랜 시간 지나 우린 다시 만날 거니까. 아빠가 가고 나면 한동안은 슬프겠지만 남은 사람은 또 그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살아야 해.”
“아빠도 힘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좀 하지 말라고. 그게 더 짜증 난다고.”
“아빤 괜찮아. 다만 우리 아들이랑 함께 하고 싶은 게 아직 많은데 해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야. 지민이 이제 곧 수염도 날 텐데 면도하는 것도 알려줘야 하고,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입학식도 다 보고 싶은데……아들 이쪽으로 와 봐.”
“요즘 촌스럽게 누가 입학식에 와. 그리고 웬만한 건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
아빠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지민아. 이건 설란이야. 해마다 봄이 되면 별처럼 예쁜 핑크색 꽃을 피운단다. 봄의 미소를 닮았지. 설란은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안 돼. 아주 예민한 녀석이거든. 이건 삭소롬이라는 꽃인데 보라색 꽃이 핀단다.”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인데.”
나는 화가 잔뜩 난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한 가시 돋친 말들을 아빠에게 쏟아냈다.
아빠가 베이커리에 나간 뒤에 엄마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지민아. 계속 그렇게 화만 내고 있을 거야? 아빠가 떠나면 많이 후회되지 않을까? 아빠가 편히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우리가 힘들지만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수술하면 되잖아. 근데 왜 엄마도 아빠도 당장 죽을 것처럼 이야기해?”
“이미 전이가 많이 돼서 병원에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수도 있어. 아빠는 병원 침대에서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야. 지민이랑 엄마랑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고 싶데.”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리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가 내 앞에서 운다. 나는 비로소 얼마남지 않은 아빠의 여행을 실감했다.
엄마와 나는 아빠가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도와주기로 몰래 약속을 했다.
우리는 매주 캠핑도 가도 낚시도 가고 꽃구경도 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활짝 웃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했는데 우리집 시계는 열 배는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빠는 계속 살이 빠지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팬더처럼 진해졌다. 힘들어 보였지만 여전히 새로운 꽃을 심고 나에게 물주는 법을 알려주었다.
베이커리의 문을 닫는 날, 아빠는 맛있는 빵을 듬뿍 만들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했다. 손님들에게는 긴 여행을 떠난다고만 했다.
“엄마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돌볼게.”
갓 구운 바삭한 크루아상을 먹으면서 나는 툭 던지듯 내뱉었다. 갑작스런 나의 말에 엄마 아빠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당연히 우리 아들 믿지. 하하하. 그런데 넌 네 나이에 맞게 너의 인생을 즐겁게 살면 돼. 알았지?”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쪼그만 게 웃겨. 누가 누굴 책임지겠다는 거야? 양말도 맨날 뒤집어서 벗는 철부지가. 엄마 강한 사람인 거 몰라? 우리 셋 중에서 제일 힘도 세고.”
엄마가 내 볼을 세게 꼬집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랑 지민이 요즘 사이가 좋네. 이제 전쟁을 끝낸 건가? 하하하하.”
“내가 언제 엄마랑 싸웠다고 그래. 항상 일방적으로 당했지. 그리고 우린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라고.”
“그렇지. 우린 모두 한팀이지. 하하하.”
모처럼 집안이 커다란 웃음으로 채워졌다. 고소한 빵 냄새 때문인지 갓 구운 우유 식빵처럼 마음이 푹신하고 말랑말랑해졌다.
아빠는 편도 티켓을 받은 약속된 날보다 한 달쯤 뒤,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와 나의 시간은 한동안 멈췄다. 연극을 마친 배우들처럼 공허함과 헛헛함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라면을 한 번에 다섯 개를 끓여 먹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토를 하기도 했다. 신물이 넘어와 속이 쓰렸다.
아빠가 떠나고 보름쯤 지났을까? 문득 베란다에 화분들이 생각났다. 아빠가 그렇게 당부했는데 거짓말처럼 아예 기억에서 지워졌던 곳이다. 물도 한번 주지 못했는데 다 말라서 죽어 버렸을까 봐 걱정됐다.
“으아아앙 으허허헝.”
나는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주방에서 간식을 준비하던 엄마가 깜짝 놀라서 주걱을 든 채로 뛰어왔다.
“지민아. 왜? 무슨 일이야?”
“엄마. 설란이 꽃을 피웠어. 내가 바보같이 깜박 잊고 물도 안 줬는데 아빠 말처럼 별꽃을 피웠어. 아빠가 잘 도착했나 봐. 으아아앙.”
엄마가 나를 꼭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분홍색 별꽃이 햇빛에 반짝였다.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https://www.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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