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서 예수님을 벼랑으로 몰고 가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났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가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오만함이 화를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고 이방인을 고쳐 주었다는 구약의 비유를 들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인 자신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된 민족인데 왜 이방인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나병이 나음을 받지 못한 표면적인 사건에 집중을 함으로써 오해를 합니다. 둘째로 그들이 지닌 오만함, 즉 선택된 민족이기에 자신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확신만 가지고서는 구원에 다다르기 힘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심으로써 그들이 지닌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되이 하느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시고자 합니다. 오해와 오만함이 불러 온 결과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습으로 돌변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도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쉽게 돌변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바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잘 믿고 따르고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다가도 한 순간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너무 쉽게 우리의 신앙을 접고 맙니다. 그런데 과연 그 소원은 하느님께서 바라셨던 일인가요? 그저 나의 욕심을 채우고자 했던 욕망의 한 뿌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나아만 장군은 독서에서도 전하듯이 남부럽지 않은 힘을 지니고 장군의 역할을 수행하던 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엘리사 예언자는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 겸손을 실행함으로써 나병이 낫게 됩니다. 욕망을 채우고자 했다면 나아만 장군 역시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에 겸손되이 실천한 그 모습과 함께 믿는 마음으로 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 그것을 삶으로 옮겨 실행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용기있는 신앙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께 용기를 청하며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실행하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