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구원의 길을 향해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신앙을 가지고 지옥이나 파멸에 이르는 길을 원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을 위해 열심히 살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우리이면서 동시에 현세의 삶에서도 참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전임 교황님이신 베네딕도 16세께서는 당신의 추기경 시절 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파멸을 선고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어디까지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파멸은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에게서 멀리 벗어나서 혼자만의 세계에 파묻히고자 하는 인간에게서 온다. 구원의 제공자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길 잃은 인간이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 차단벽을 세우고, 스스로 구원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는 병든 마음 때문에 파멸을 길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누구요?” 유다인들 역시도 예수님과 차단벽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세워놓은 잣대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분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명백히 밝히고 또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결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 28) 구원을 받고자 하면서 동시에 파멸의 길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구원을 선택하여 하느님의 뜻에 맞갖은 삶을 살던지, 파멸을 선택하여 하느님과 나 사이에 벽을 세워 그분의 뜻을 버리던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결단은 신앙에 있어 큰 도움이 되고 힘이 됩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과감히 뿌리치는 결단, 신앙과 세속의 유혹 사이에서 신앙을 위한 힘든 결정, 이 모든 모습들이 하느님과 맺어진 올바른 관계일 때 우리는 구원의 길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중에 누구 하나 파멸의 길로 들어서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 파멸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노력을 통해 신앙이 구원의 길에 올바른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도를 통해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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