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덧 사순시기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며 모두가 함께 하지는 못하였지만 하느님 안에서 영적으로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다시금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를 보내고 나면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준비하는 성주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모든 잘못과 죄를 씻어주시도록 청하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에게 물으시듯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예!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대답은 기도가 생활이 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올해 사순시기 담화문에서 “사순시기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봅니다. “우리는 이 하느님의 자비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 안에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분과의 대화는 벗끼리 나누는 허심탄회한 기도입니다. 그러하기에 사순시기에 기도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기도는 의무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야할 시급성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보다 먼저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 속을 꿰뚫고 무디어진 우리 마음을 다듬어 주어, 우리가 더더욱 하느님께 그리고 하느님 뜻으로 돌아서게 해주는 기도입니다.” 결국 올바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은총이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고 그 은총은 우리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모습에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라자로와 그의 누이들을 마주하면서 그들 역시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예수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원망은 세속적이거나 욕심이 가득 찬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기에, 간절히 따르기에 드러난 하나의 투정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투정을 부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투정은 아니어야 합니다. 신앙은 내 욕심과 내 뜻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한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는 부활을 차분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하겠습니다. 우리 안의 이기심, 교만, 욕심을 덜어내고 예수님께서 표본으로 보여주신 사랑에 동참하는 모습을 통해 부활이 참되게 우리 안에 새겨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겨진 신앙을 통해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모습으로 이 한주간을 보내며 부활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