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의 두번째 주일을 보내는 오늘, 우리는 복음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심이 이 세상의 영광이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다가오는 악의 유혹을 끊어버리겠다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는 말씀만을 들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래 지니셨던 신성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변모는 인간적으로 나약해질 수도 있는 마음에 성령의 불을 키워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한 준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셨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기를 청하셨습니다.
하물며 예수님께서도 늘 기도 중에, 지상 생활 중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를 청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제 2 독서는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2 티모테오 1, 9)
우리의 행실이 선한 말이나 행동을 보아서가 아니고, 원래 창조 목적인 구원에 이르는 은총에로 이르기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세상적 관점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신앙적 관점으로 삶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신앙적 관점은 성령께 청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여기에 초막을 셋을 지어드린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겁을 먹고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마태오 17, 6)고 전합니다.
겁에 질려 성령께 열려 있지 않은 베드로 사도 안에서 평지에 내려가 예수님의 사명을 함께 하고 세상에 누룩이 되라는 부르심을 포기하고 산 위에 편안히 머물려는 유혹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악의 영에게서 오는 치밀한 유혹입니다.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땅하게 보이는 것으로 사도를 유혹하면서, 하느님이 선택하신 사명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편안하게 머물려는 모습,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지내며, 영적인 것까지도 모두 자신이 제어하려는 유혹, 이렇게도 아름답고 쾌적하니....이 모든 것은 흔히 신심이나 교회적인 소속감의 표지가 아니라 오히려 비겁함, 안일함, 빈약한 전망, 타성의 표지입니다.
그렇게 우리도 유혹을 받고 머물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뜻에 대입시켜 보면 금방 그것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악의 영이 장난치고 유혹하여 옳게 보이게끔 눈속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성령께서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먼저 기도로써 청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뜻이 드러나게 하고 교묘하게 눈속임을 함으로써 우리에게 다가오는 악의 영에 휘둘릴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식별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기도입니다. 시인이며 현자의 생활을 한 카비르는 짧은 시 안에서 우리의 바르지 못한 기도의 삶을 지적합니다.
“손으로는 묵주알을 굴리면서 입으로는 혀를 놀리고 마음은 온갖 군데로 쏠리는 것 그것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떠오르게 우리를 괴롭히는 악의 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2티모 1,8)하는 삶을 통해 악의 영에서 벗어나고 성령과 함께 하는 신앙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순 시기는 은총을 두 배로 더 받을 수 있는 시기라고 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은총을 성령께 청함으로써 우리가 받을 은총을 충만히 받기를 이 미사중에 기도로 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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