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사순 제 3 주간 금요일2020-03-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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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엔가 후배신부와 차를 타고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신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는 주제로 귀결되고는 하는데 후배 신부가 이런 화두를 던졌습니다.

 

형님은 신부로 살아가면서 하느님 앞에 가장 큰 죄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신자들에게 성실하지 못한 모습,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생각한 욕심, 진심으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모습...등등 그리고 신부들에게 있어 가장 취약할 수도 있는 부분인 돈과 여자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런 모든 것들이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후배신부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하느님 앞에서 가장 부끄럽고 하느님께서 가장 큰 죄로 여기실 것은 아마도 돈 문제가 아닐까 해요. 다른 죄들에 대한 책임도 물으시겠지만 돈에 관해서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문득 신학생때 연배가 많으신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이 신부가 되어 살면서 많은 유혹들이 다가올 것입니다. 특히 돈과 여자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인데, 동료신부가 여자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결국에는 환속을 하게 되는 경우에 함께 도와주고 힘을 보태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동료사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함께 돌보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돈 문제로 인해 본당에서 일이 생겨 환속을 하게 되면 그 신부는 동료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돈은 우리가 의지적으로 끊어버릴 수 있는 유혹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들으며 여자 문제나 돈 문제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특별히 더 조심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그 신부님의 말씀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신자들을 사랑하기 이전에 동료 사제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 하느님 나라를 함께 준비하고 맞이하기 위해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정작 가까이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함을 생각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먼 곳을 바라보고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 내 주변, 내 가까이에 있는 동료와 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내 앞에 조금 더 가까이 둘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삶이 꾸준히 이어질 때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고 굳이 그 사랑을 나누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은 사람들다운 모습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