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차별의 새로운 시각을 말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그 중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저자는 고정관념을 ‘유리한 편견’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합니다. “고정관념의 긍정적 작용을 ‘유리한 편견’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명문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은 그 사실만으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얻게 된다. 이것이 실제로 현실을 만든다. 일상적인 만남이나 각종 사회활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가고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런 순환 고리 속에서 편견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차별을 당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는 점점 더 그 순환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바리사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부익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고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에 의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율법을 해석해서 교묘하게 안식일 율법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의 의미가 아니라 짐을 지우고 죄를 짓게 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고정관념과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하려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보기 좋게 한방 먹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비록 예수님 자신을 향한 말씀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을 수 있도록 안식일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법규와 규정을 말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하고,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규와 규정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고 그것이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순간 우리 역시도 유리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일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의 실천을 위한 것임을 수차례 말씀하십니다. 그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우리에게 유리하거나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만 하는 사랑의 실천에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우리가 기억하고 행할 때 우리 역시 안식일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