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 때문에 밖해를 당하고 모독을 당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 시대를 선포했고 이를 위해 회개의 설교를 했습니다. 구약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 신약의 시대를 맞는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한 큰 기대에 들떠 있었습니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믿으며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때가 되어 하늘나라가 가까워 왔으니 여러분은 회개하고 이제 나의 기쁜 소식을 믿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모였고 복음 전파 때문에 먹고 쉴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당시 지도층을 이루던 소위 기득권 층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로마 병사들은 물론이고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학자들, 부자들, 유다계 지도자들이 그들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사람일수록 예수님의 말씀에 더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사셨고 주 활동무대였던 갈릴래야 지방은 산악지역이었고 시골지역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시되기까지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는 이곳 갈릴래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가난해서 헐벗고 고생하며 때로는 무시 천대까지 받던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설교는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난한 자되어 이들과 하나가 되었을 때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들의 기대는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기적이 행해졌고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매이지 않고 세상을 이겨 가는 예수님의 삶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느님 나라를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저 세상의 삶으로만 머문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과 타협하던 당시의 율법학자와 유다계 지도자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통하여 나타나는 변화된 삶에선 세상을 이기는 지혜와 함께 부활한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됩니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세상에서의 삶은 가난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비움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르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과 봉사, 속죄 양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속죄양의 고통과 죽음이 부활의 승리를 이름으로써 그를 믿고 따르는 신앙의 삶이 바로 부활의 삶임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신자라고 해서 또 신자가 되었다 해서 세상에서 고통을 면하고 어려움을 들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자이기 때문에 더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통과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거나 전가하지 않고 성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이를 극복하고 이겨간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복 적이거나 꿈속의 어느 환상적인 것이 아니고 가장 현실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일부러 가난해지고 울고 배고파 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상의 재물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이에 반하는 세상적 욕구를 포기하는 고통과,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과 세상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중립적 존재는 되어서는 안됩니다 분명하게 하느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