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연중 제 23 주간 목요일2020-09-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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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신부가 되고 처음으로 간 성당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보좌신부로 생활한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사무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장애우 형제님께서 면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제님은 행색이 초라하고 한쪽 팔은 마비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고 다리도 불편했습니다. ‘이런 몸으로 면담 오시느라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을 하고 교리실에 모시고 따뜻한 차를 드렸습니다. 형제님은 차를 드실 생각도 안하시고 당신의 상황을 말씀하셨습니다. 1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아들은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였다가 한 달전쯤 깨어났고, 자신은 이렇게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며 이제부터라도 하느님을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는 내용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옆 침상에 계신 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성경책을 하나 주셨는데 작은 성경책이어서 볼 수가 없으니 혹시 큰 성경책을 하나 주시면 안되겠냐고 하시기에 선뜻 성경책을 드리면서 지갑에 얼마 많지는 않았지만 아드님과 식사라도 제대로 하시라고 돈을 함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데리고 오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약속했던 주일에 형제님과 아들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아들이 몸이 많이 안좋은가보다생각했고 주일을 보내고 다음 날 동기신부들 모임에 가서 생활나눔을 하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 신부 하나가 혹시 그 형제님의 옷차림과 상태가 이러저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만 어제 자기한테 와서는 자기가 이제 성당을 다니지 않을거니까 성경책 제가 형제님을 드렸던 큰 성경이었습니다 - 을 팔겠다고 하면서 5만원을 내놓으라고 강매를 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사실 그 형제님은 전국에서 새 신부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시는 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저를 찾아오는 분들에 대한 경계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교적을 먼저 확인해 보고 의심을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러다보니 제 자신이 너무 옹색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신부가 되었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이 자꾸 떠오르면서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러나 과하게 가지거나 욕심을 부리다 보면 우리가 정작 보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보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우리가 마땅히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드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